2 기하치조: 섬을 지탱한 견직물
에도 시대(1603~1867) 섬 경제를 지탱한 기하치조
에도 시대(1603~1867)에는 연공을 곡물이나 금전으로 납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하치조지마섬에서는 곡물 대신 특산품인 견직물(기하치조)을 연공으로 납부했습니다. 그 양은 관리가 조사한 논밭의 면적에 따라 산출되어, 직물의 품질 또한 관리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습니다. 기하치조는 쇼군 가문의 어용품이 되어 오오쿠(쇼군의 부인, 하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고텐조추(하녀) 등이 착용했습니다. 기하치조에는 막부에 납부하는 직물 이외에 에도의 상인을 통해 판매되는 것이 있어 점차 일부 다이묘(영주)와 하타모토(쇼군의 직속 무사)뿐만 아니라 에도의 일반인에게도 퍼져 나갔습니다. 그 매출 대금으로 생사(生絲)와 식량, 기타 필요한 물자를 구매하여 섬으로 가져왔습니다.
연공으로 바쳐진 기하치조의 역사
1620년
일어난 일: Officials visit the island to inspect the fields
연공 액수(기하치조): 논밭 면적이 아니라 다이칸(다이칸쇼에서 집무하는 관리)의 판단으로 결정
1670년
1673년
일어난 일: 관리가 섬으로 건너와 논밭을 시찰
연공 액수(기하치조): 620반(反)(※길이 약 7,440m)
1722년
일어난 일: 하치조코지마섬, 아오가시마섬도 연공 부과 대상으로서 조사
연공 액수(기하치조): 635반 반
1738년
엄밀한 조사를 실시(반·무·보로 표기)
1782년
일어난 일: 새로 개간한 논밭에도 과세
연공 액수(기하치조): 663반 2분 5리
1839년
일어난 일: 최대치를 기록한 연공 액수
연공 액수(기하치조): 704반 9분 7리 5모
1909년
일어난 일: 연공을 견직물로 납부하던 제도가 폐지되고, 화폐로 납부하는 금납 방식의 지조세로 변경
연공 액수(기하치조): 기하치조 1반을 1엔 72센 5린으로 환산
※에도 시대에는 직물을 짜는 길이가 1필(2반분)로, 곡척 8장분(약 24m)이었습니다.